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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상자 10 - '노인의 시선'
    스토리박스/[단편]상자 (The Box) 2013. 6. 3. 00:06


    연장의 노인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기괴한 장면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장면은 더 희한했습니다. 
    멀쩡하게 생긴 의자 위 남자가 그 무덤을 향해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다짜고짜 옆에 있는 구경꾼 한 사람을 붙들고 
    이 상황을 설명하라 했습니다. 

    노인이라고는 하지만 얼굴에 문신처럼 새겨진 주름들과 
    두터운 손. 무엇보다 유구한 세월 동안 가문의 비기로 전해져 온 
    연장을 다루는 기술과 완력에 붙들린 구경꾼은 
    노인과의 대면으로 몹시 신선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하고 떨리는 입술로 
    오늘 하루 이 시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노인에게 설명했습니다. 

    노인은 자신에 눈에 들어온 의자 위 남자와 
    그의 '기쁨의 구슬'
    그리고 '온전케 하는 기름'에 대해서 설명 들었습니다. 

    그 물건들(보물들)의 값어치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가격으로 흥정을 할 수 있는 
    여느 물건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쯤은 
    이제 노인과 시장 사람 전체가 인식하고 있는 바였습니다. 

    잠시 후 무덤이 다시 열리고 
    그 속에서 허연 (뼈 같은) 손이 스케치북과 펜을 내밀었습니다. 
    슬쩍 젖혀진 머리카락 사이로 오래된 두려움과 
    향기롭고 영롱한 빛이 뒤섞여 흘러나왔습니다. 

    노인은 비로소 그것이 여인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노인도 아주 짧은 순간 여인의 충혈된 눈을 보았습니다. 

    다음 순간 구슬의 남자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화구에 
    '온전케 하는 기름'을 떨어뜨렸습니다. 

    노인은 구경꾼들과 함께 깊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두 번째 기름이 펜 위에서 속절없이 증발해 버릴 때에는 
    노인은 고개를 돌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노인은 
    두 주먹을 떨며 눈을 질끈 감은채 
    앙다문 어금니 사이로 소리쳤습니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거 한 방울이면 아프리카에 한 나라를 살렸을 거야..!! 
    멍청한 사내 같으니라고..!!"

    노인은 오랜 시간 세상 많은 곳을 다니면서
    가난의 굴레에 갇혀 고통 속에 죽어가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힘겨운 삶의 열매를
    그 아이들을 돕는 일에 거의 모든 벌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슬의 남자는 군중의 아우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기름을 여인의 머리에 떨구었습니다. 

    노인은 한 손으로 상자를 묶은 쇠사슬을 한 번 더 단단히 감아쥐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곧장 구슬의 남자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뜯어잡았습니다. 
    참으로 맹수 같은 움직임이었습니다. 

    모두가 기겁했지만 구슬의 남자는 
    한치의 동요도 없이 여인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이 쓸모없는 미치광이의 목을 
    부러뜨려버릴 기세로 
    한 번 더 힘을 주려는 순간. 

    여인의 정수리에 떨어진 한 방울의 기름은 미세하게 튀겨 오르더니
    마치 한 양동이가 끼얹어진 듯이
    정수리에서 바닥에 닿은 머리끝까지 
    '촤악-!'하고 쏟아져 내렸습니다. 

    표현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후 
    여인을 덮은 머리 전체에서 빛이 환하게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여인의 마리 카락이 뭉텅뭉텅 '툭-! 툭-!' 하며 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에 차례로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은 마치 쇠사슬이 끊어져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멱살을 움켜쥔 노인과 구슬의 남자가 
    함께 이 장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촤르르르..! 촤르르르..!'

    여인의 머리카락들은 떨어지면서 진짜 쇠사슬로 변하고 있었고, 
    그 충격으로 바닥까지 패이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손목 굵기로 떨어진 쇠사슬은 
    아이 손가락 굵기만 한 뱀들로 변하여 사방으로 급히 기어가는 듯하더니 
    금세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떨어지고 나뉘고 사라지고..
    끊어지고 흩어지고 사라지고..


    모두가 바닥에서 벌어지는 진귀하고 역겨운 쇼에 넋을 빼앗긴 와중에 
    여인은 어깨 위 길이로 한결 가벼워진 머리 모양을 하고 홀로 일어서 있었습니다. 

    '기쁨의 구슬'을 고이 든 채로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여인을 
    모두가 놀라움으로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눈은 젖어 있었지만 더 이상 충혈되어 있지 않았고, 
    뼈와 같던 손과 팔은 느리지만 확연하게 핏빛 생기가 돌며 
    살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또 더 아름다워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멈출 기세 없이 영원히 그럴 거 같았습니다. 

    노인은 그제야 틀어진 손이 풀리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습니다. 
    여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감상해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기름 한 방울(아니 세 방울의) 값어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움이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인의 마음에서도 오래된 '아름다움'에의 갈망이 
    다시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속...)


      



















    '경작하다. 마음.' (2013.5)


    (36 * 51.5 cm, 종이 위 펜)


    조수연 作









    2013/06/06 - [연재소설/보물상자 season.1] - 보물상자 11 - '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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