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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상자 8 - '기름부음'
    스토리박스/[단편]상자 (The Box) 2013. 5. 18. 16:10


    여인이 한참을 흐느낍니다. 

    여인의 눈물은 마치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원천에서 솟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구슬의 남자가 엎드린 여인의 등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순간 산뜻한 바람 한줄기가 여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파고들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여인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 천천히 두 손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 이게 뭐죠...?... 저한테 무슨 마법을 거신 건가요..? 이 구슬 때문인가요...?.."

    ".. 아니에요.. 저는 
    당신이 원래부터 들었어야 하는 말을 했을 뿐이에요.. 
    그 구슬이나 제겐 당신을 그렇게 만들만한 능력이 없어요..^^.."

    "......"

    "자.. 그럼.. 다시 부탁드려 볼게요.. 
    목걸이 줄.. ^^ "

    "선생님.. 아무래도 전..."

    "음.. 이게 당신에게도 좀 도움이 될 거 같은데.. 어떻게 되나 한번 볼까요..?"

    남자가 자신의 상자에서 기름의 남자에게 구입한 '온전케 하는 기름'을 꺼냈습니다. 

    "당신의 화구를 좀 보여주시겠어요..?"

    "... 선생님... 이건 볼품없는 물건이랍니다. 보여드리기가..."

    "괜찮아요.. 그 구슬도 오늘 아침까진 그랬었거든요..^^ 
    이 기름이 좀 도움이 될 거예요.."

    "그건... 무슨 기름인가요...?"

    "제 오래된 구슬을 다시 빛나게 해 준 기름이지요.. 
    당신의 화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여인은 남자가 건넨 구슬을 놓칠세라 단단히 움켜쥔 채 
    두려움과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의 화구를 (무덤 같은) 머리카락 밖으로 
    슬그머니 밀어내었습니다. 

    (남자에게서 '기쁨의 구슬'을 구입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전재산에 빚까지 얹어서 
    그 '기쁨의 구슬'을 사 갔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기쁨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상 그 구슬이 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일생동안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로 그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구슬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줄은 없었지만 목걸이가 될 구슬은 이미 여인의 소유로 인정된 
    남자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니 구슬은 당연히 그 주인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주었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여전히... 기쁘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만에 빛 아래 노출된 여인의 화구는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스케치북과 펜이었습니다. 

    "자.. 그럼..."

    구슬의 남자가 그 화구 앞에 꿇어앉았습니다. 
    이미 시장에서 유명인이 된 남자를 따라온 사람들이 어느새 
    인파가 되어 여인과 남자 주변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남자의 손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구슬의 남자의 손도 나지막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기름 한 방울을 그녀의 스케치북에 떨어뜨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주 작은 탄식만 흐를 뿐이었습니다. 
    그만큼 모두들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인을 제외한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온전케 하는 기름' 한 방울의 
    값어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케치북에 떨어진 기름은 종이의 표면을 살짝 짙게 만들며 퍼지더니 
    이내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스케치북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인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케치북과 구슬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주변의 구경꾼들도, 구슬의 남자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습니다. 

    "... 아... 이럴 리가...
    하지만. 실망하진 말아요.. 제겐 아직 두 방울의 기름이 남아 있답니다..^^
    이번엔 펜에 한번..."

    남자의 손은 망설임 없이 펜 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모여든 구경꾼들 전부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재산을 
    다 더한 것보다 비싼 그 기름 한 방울이 펜 위로 곧장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기름이 펜 위에 닿는 순간 실제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귀에는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

    기름은 펜을 타고 흐르며 또 향긋한 냄새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사람들 사이에선 
    욕지기가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니 씨벌.. 왜?!! 그걸 그렇게 낭비하는 거야.!! 나나 주지..!!!"

    "돈지랄이지.. 돈지랄이야..!"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거 한 방울이면 아프리카에 한 나라를 살렸을 거야..!! 
    멍청한 사내 같으니라고..!!"

    사람들은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남자의 손에서 기름을 빼앗아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빼앗는다고 자기의 것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탄식은 더욱 깊어지고만 있었습니다. 

    여인이 한층 더 흔들리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구슬의 남자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남은 
    (이상하게 처음보다 더 작아 보이는) 
    작디작은 기름병과 여인의 확고부동한 '재생 화구'를 보고 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남자는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엎드렸던 여인도 남자의 눈을 좇아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었습니다.

    "잘 생각했어!! 그 여자가 대체 뭐라고 그런 낭비를...!"

    인파 사이로 신경질이 튀어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가 말했습니다. 

    "이런 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저도 오기가 생기는데요..^^"

    남자도 자신을 위해 이 귀한 기름을 한 방울쯤 남겨둘 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나눈 대화에서 남자는 생각지 못했던 큰 깨달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나 혹은 가지지 못한 것으로.. 
    내 가치는 결정되지 않아..!'

    남자가 그 깨달음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마지막 한 방울을 여인의 정수리에 떨구었습니다. 

    "저런...!!!"

    모든 이의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기름부음 (Anointing)'
    조수연作
    (출처 : http://sionsoo.tistory.com/21 )






    2013/05/28 - [연재소설/보물상자 season.1] - 보물상자 9 - '연장의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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