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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상자 6 - '무덤의 여인'
    스토리박스/[단편]상자 (The Box) 2013. 5. 11. 00:06




    구슬의 남자가 걷고 있습니다. 
    그의 오래된 가죽 주머니와 회복된 '기쁨의 구슬' 탓에 
    이제 시장에서 그를 모르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향기가 났고, 오색 창연 한 빛이 맴돌았습니다. 
    그 빛과 향기는 인접한 모든 이에게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구슬의 남자는 우쭐한 마음이 들거나, 
    더 비싼 값에 구슬을 팔려고 다른 수를 궁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주목하는 이 시선들과 기쁨이 전이되는 능력의 원천이 
    가죽 주머니 속 구슬들 때문인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은 순수한 선물이자, 
    처음으로 경험한 완전한 은혜의 열매인 것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것이라곤 그저.. 그 남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제 이 구슬의 남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과 목적으로 
    시장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전까지 구슬의 남자에게 이 '시장'은 생계를 위한 전쟁터였습니다. 
    그의 전장을 위해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큰 빚을 내어야 했고 이젠 그 빚을 위해 자신의 상자 속 물건들을 
    최대한 비싸게 팔 모든 궁리를 하고 살았습니다. 

    또.. 꿈꾸던 사업을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미래에 자신의 가족에게 빚만 잔뜩 남기고 
    비명횡사할 걱정과 두려움에 적지 않은 액수로 생명, 상해 보험도 들었기 때문에 
    사업자금은커녕 주머니 사정은 늘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낮에 있었던 그 '기름부음' 사건으로 
    자신이 가진 구슬의 가치를 새로 알게 되었고, 자신이 얼마만큼 부자인지 
    혹은 어느 정도 부자가 될 수 있을지 가늠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구슬의 남자의 눈엔 세상이 그전과 달라 보였습니다. 
    시장에 좌판을 펴고 매일의 생계와 미래의 두려움을 위해 상자 속 '보물'들을 
    그저 '물건'으로 처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값없이 주어진 '보물'들을 알아보는 눈들이 가리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걸음마다 기쁨의 향기가 흩뿌려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남자의 시선에 한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사실 첫인상은 '무덤' 같았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앉은 몸을 완전히 덮고 있는 것은 
    그녀의 길고 긴 덥수룩한 머리카락이었습니다. 
    '일생동안 머리를 자른 적이 없나 보다'라고 남자는 생각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단단히 삐친 꼬마 아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습니다. 

    여인의 옆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의자가 있었고, 
    부유해 보이는 한 남자가 앉아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머리카락들이 들썩이는 것을 보니 
    여인이 그 속에서 무언갈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때...
    머리카락 사이로 깡마르고 하얀 손과 종이 한 장이 쑥 나왔습니다.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그 종이를 받아 들고 지폐 한 장을 
    그 하얀 손에 쥐어주고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머리카락 속에서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시장 누구도 그 여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그려야 할 때면 모두 그 여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약도나 범죄자 몽타주에서부터 자동차나 건축물의 설계도면까지..
    여인에게는 모든 종류의 그림을 말하는 대로 듣고 그려주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단. 컬러가 있는 그림이나 너무 큰 크기의 그림은 불가능했습니다. 

    그중 성인만화와 지옥에서 튀어나온듯한 괴물 캐릭터를 의뢰받을 때는 
    상대적으로 많은 보수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나면 머리가 더 굵고 길고 무겁게 자라 낫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푼돈으로 자신의 재능을 팔고 있는 ('무덤'같은) 여인을..

    구슬의 남자가 멀찌감치 바라보고 있습니다. 










    2013/05/11 - [연재소설/보물상자 season.1] - 보물상자 7 - '특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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