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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닭발을 사랑할 수 있나요?
    묵 상/세 상 2016. 2. 6. 08:29

    난 널 좋아해. 라는 말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난 널 사랑해. 라는 말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호감은 좋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난 니가 참 좋아" 정도면
    말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거의 대부분 소실없이 전달 가능합니다.

    반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한' 결단이고 실천이기 때문에 
    아무리 말과 표정과 대단한 선물로 표현해 봤자
    실제의 그 의미를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선포는
    '하나님도 사랑이시라.'나
    '사랑이 하나님이다'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을 사람의 언어 안에서
    다 담아내고 다 표현할 수 없듯이
    사랑이 그러합니다.

    불닭발을 좋아할 수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강아지를 좋아할 수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불닭발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고
    나를 희생하고
    심지어 내 생명을 기꺼이 내 줄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 특히 동성을 위해 인내와 희생과 대신 죽음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영원' 이 빠져있기에 비슷하지만 결국 가짜 입니다.


    사랑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

    그래서 '사랑' 할 수 있은 관계는
    오직. 결혼(남과 남이 만나 끝까지 하겠다는 약속)과 잉태와 출산으로 맺어지는
    가족 (에클레시아. 오이코스.) 입니다.

    가족은 생명과 DNA로 이어지는 영원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태초의 하나님의 디자인은 그래서
    '씨맺는 식물'들이 가득한 지구였습니다.
    그것이 영원한 관계. '사랑'의 컨셉을 담은 물리적 표현이었습니다.

    그래도 불닭발을 사랑한다며
    불닭발에 '애'를 붙여본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호감'이거나 '자기만족' 
    혹은 '중독'이지
    결코 '사랑'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형국은 마치
    스스로 세운 신들과
    하나님의 형상을 또 조각해 놓고
    그 모두를 뒤섞어서
    내 입맛에 맞는 신 앞에 엎뜨린
    모습들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언어가 다 갈라져
    서로 분열하게 되었다는 바벨탑 사건.
    바벨은 말 그대로
    '혼란케 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랑과 호감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 세대는
    '결혼'이라는 사랑을 담을 유일한 그릇 조차.

    자신에 입맛에 맞는 '호감'으로 가득 체우고 있다가

    호감이 줄어들면 사랑이 식었다고 하고.
    다른 호감이 나타나면 '운명적 사랑'이라 부르는 대참사를 맞곤 합니다.


    그런 걸 다루는 이야기를
    우리는 -다행이도 - '막장드라마'라 합니다.

    막장드라마도 더 이상 막장드라마 같이 안 보이는 시대가 온다면
    아마도 '이야기'의 종말을 맞게 될것입니다.

    ...

    예수 : 베드로야.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아가페)?
    베드로 : 네~^^ 제가 예수님 좋아해요(필레오). 아시잖아요~^^

    예수 : 나를 사랑(아가페)하지 않고?
    베드로 : 아시면서~. 좋아한다니까요(필레오)~!^^

    예수 : 나를 좋아한다고(필레오)?
    베드로 : (근심어린 표정) 네. 예수님. 아시다시피 제가 예수님을 좋아합니다.(필레오)


    예수님은 베드로와 이 세번의 질문과 대답으로 무엇을 전달하길 원하셨을까?

    "(이것을 분별해서) 내 양을 먹이라."는 의미는 아니셨을까.

    ------

    모닥불 앞에서
    세 번을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에게 부활해 세 번째 나타나셔서
    세 번의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 아주 잔인한 각인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나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각인이었습니다.


    ----

    “This was now the third time that Jesus revealed Himself (appeared, was manifest) to the disciples after He had risen from the dead.

    When they had eaten,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others do–with reasoning, intentional, spiritual devotion, as one loves the Father]?
    He said to Him,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that I have deep, instinctive, personal affection for You, as for a close friend].
    He said to him, Feed My lambs.

    Again He said to him the second time,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with reasoning, intentional, spiritual devotion, as one loves the Father]?
    He said to Him,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that I have a deep, instinctive, personal affection for You, as for a close friend].
    He said to him, Shepherd (tend) My sheep.

    He said to him the third time,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with a deep, instinctive, personal affection for Me, as for a close friend]?
    Peter was grieved (was saddened and hurt) that He should ask him the third time, Do you love Me? And he said to Him, Lord, You know everything; You know that I love You [that I have a deep, instinctive, personal affection for You, as for a close friend].
    Jesus said to him, Feed My sheep.”

    John 21:14-17 AMP
    http://bible.com/8/jhn.21.14-17.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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