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청년의 결국은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으러 나온 이 청년에게 

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했을까?


첫째로 생각해 볼것은

청년의 질문에 "제가" 라고 한 부분이다.

모든 율법을 성실히 지켜온 청년은 자신의 행위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 "사람이 어떻게 살면.. "이라든지 "영생을 얻으려면.." 이라고 묻지 않고

"제가" 라고 말을 꺼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풍부한 재물 또한 율법의 준행에서 기인한 것이라 

믿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아.. 네가 원인이 되고 싶구나..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거라..' 라는 속 뜻이 아니셨을까?



두번째 청년의 질문에는 "무슨 선한 일"을 하면..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청년의 마음에는 영생과 사람의 선한 행실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국 구원과 영생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행위에 달려있다는 믿음을 고백한 셈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만약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을 많이 구제해 주거라.."

라고 했다면, 

청년은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 팔아" 나눠 주라고 하신다.

그 요청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번째 관점은 이것이다.

예수님의 요구. 

"가난한 자들에게 네것을 다 팔아 나눠 주고 오너라."


행위로 선하게 되고, 행위로 구원을 얻고, 행위로 영생을 얻으려 했던 

청년의 사고체계로 유추해 보자면, 

가난한 자들은 그 행위가 가난해 마땅했을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의로운 재물이 그곳으로 흘러가는것이 몹시도 불쾌했을 것이다.


네번째 살펴볼 것은.

22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라는 구절인데.


이 청년은 영생과 자신의 재물을 저울질 했을 때, 아직은 '재물' 쪽으로 기울어 진 것이다.

근심한 이유가 재물이 많은것이었다.


보이고 만져지고 누릴 수 있는 청년의 많은 재물은

보이지 않는 하늘 보화와 영생과 바꿀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청년의 신은 하나님이 아닌, 재물이었다.



4 복음서 중 마태복음은 특히 유대인과 유대의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록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일컬음 받던, 율법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약속 되신 예수님은

죽여 마땅한 신성모독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 마태복음의 이 부자 청년 이야기는

바로 율법적 행위에 근거한 구원. 신앙생활에 대한 경종이었다.


예수를 통한 오직 은혜의 선물. 구원.

사람의 행위. 사람 그 자체가 아무런 희망 없음의 선포하는 십자가.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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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
1.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2. 사랑이 하나님이다.
가 전혀 다른 의미이듯이.

1. 하나님은 모든이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
라는 말과
2.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
라는 말의 의미는 다르다.

전자(1.)는 사실이고
후자(2.)는 사실을 뒤집어 오해한 것이다.

...

구원받지 못한 수 많은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지옥과 천국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 놓지 못함을 본다.

하지만, 모르는것은 모르는 것이고,
아는것은 아는것이다.

내가 아는 사실은
하나님은 모든이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가지셨고, 의지가 있으시고,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실제하는 지옥에 관한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누군가는 예수님과 구원 없이 죽는다. (그렇게 여겨지는 수없이 많은 죽음이 있다.)
그들은 마음으로 믿지 못했고,
입으로 시인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자동 지옥행인가?





...

자. 어려운 이야기는 잠시 내려두고..
이제 상식이 되어 버린 빛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과학은 빛 보다 빠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이 우주의 크기를 측정해 보니
137억년 쯤 된다고 한다.
빛의 속도로 137억년 쯤 가야 하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만하다.

그런데.

만약 빛보다 빠른 속도의 폭발이 있었다면?
만약 하나님이 그런 능력이 있으시다면?
그래서 137억광년에 걸친 이 광할한 공간을
단 1초에 펼칠 수 있다면?

...

자.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작가의 손에 한 주인공의 위급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1시간 이상 숨쉴만한 공기가 없고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 과연 작가에게도 그럴까?
작가에게도 그의 작품속 주인공을 살릴 방법이 과연 없을까?

작품속 주인공에게 주어진 1시간이
작가에게도 1시간의 같은 시간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작가는 이 장면의 이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작가 인생 전체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모든 방법이 있다.
심지어 이 소설이 판타지 장르라면 일은 더욱 쉬워진다.

...

자. 다시 이 순간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한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 있다고 하자.

과연 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과 능력이 없다고 믿는가?

...

자. 지옥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천국과 마찬가지로 지옥은 살아서 가는 곳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국을 끌어와, 혹은 침노해 누리듯이
지옥 또한 끌어와 침노해 경험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인성 수준을 끌어내려 상상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관계없는 어떤 순간을 떠 올릴때 마다
지옥은 순간순간 우리에게 엄습한다.

...

자.
죽음을 이기셨다는 예수님의 선포를 돌려서 보자.
다 이루셨다는 예수님의 선포를 돌려서 보자.

전능하신 하나님.
그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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יְהוּדָה

유다 = 찬양
= יְהֹוָה (여호와) + ד (.달렛 =gate. 문)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9 KRV)



찬양
= 하나님 문
= 하나님 예수
= 하나님 그가 구원하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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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유대인들은 밭갈고 씨를 뿌리지 않고
씨 뿌리고 밭을 간다고 한다.
왜 그러는진 몰라도 그런다고 한다.

밭을 다 갈아놓고 씨를 뿌리면
버려지는 씨가 그만큼 적어질거 같지만
여튼 성경적 가르침은 씨뿌리면 기경을 한다.


씨는 무엇인가?
천국의 복음 아닌가. 천국 그 자체 아닌가.
그것을 씨앗의 형태로 보내신다.

말씀이 육신-예수-되어 이땅에 오신 사건.
그것은 천국의 씨앗이었다.
그날부터 이땅은 크고 작게 진동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슨 씨앗을 어디다 뿌릴 것인가?

여전히 씨가 뿌려지고
땅이 기경되고
생명을 싹 틔워야할 땅 들이 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천국의 DNA를 심으셨다.
우리가 그 땅에 심겨야할 씨앗이라고 하신다.

이제 나의 씨앗을
그들에게 어떻게 뿌려야할까.

예수는
베드로는 요한은 바울은
그 씨앗을 어떻게 뿌렸나..

...

어쩌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것은
땅이나 씨가 한정된 자원일때 그리하는것 아닐까?

만약
씨가 무한히 있고
씨가 뿌려져 기경하는 땅만큼
자기 땅이 된다고 한다면

최대한 아무땅이나
최대한 멀리 던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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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TAG dna, 기경, , 천국
환영하는 문화가 있었으면 해요~
라고 건의했더니.

아.  좋겠네요..
누가 담당하면 좋을까요..?

라는 뜨악스런 반응을 본적이 있다.

당시의 건의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걸
수 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문화는
Top - Down 으로 형성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Bottom - Up 인가..?
두 경우 모두 적지않은 반향과 고통을 수반한다. 필수적으로.
(한쪽을 독재라고 하고. 다른 한쪽을 쿠데타-좋게 말해 혁명-라고 한다.)

오히려 건강한 문화는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In - Out 의 방식이다.

내 안에 그 문화가 있고
내가 그 문화 안에 있을때.
(완전히 쩔어 있어야 한다.
근처만 가도 향기가 진동할 정도로..)
그러면 그것은 자연스레 바깥으로 전염. 잉태. 발화 된다.

물론.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쁜 것에 쩔어 있으면. 문화가 되기 이전에 상당한 핍박을 감수 해야 한다.
범부들은 그 향기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천국이 하늘 위 저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면,
문화는 Top - Down 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천국은 이 땅에 사람 속에 심기는 전략을 선택했다.

마리아 안에.
예수 안에.
그리고 제자들 안에.
거듭난 자들 안에.
씨앗으로 심긴다.

정말 작아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겨자씨 크기의 문화.
우매하기 짝이 없어 보이고. 거의 가망도 없어보이는 그 전략.
전도의 미련한 것.


...

천국만 그렇지는 않다.
지옥도 마찬가지로 위에서 어떤 문화를 뿌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 안에 두려움을 심는다.



그래서 그 두려움이 발아하여 꽃 피우고 열매맺기를 기다린다.
그들이 창궐해도 어떤 문화가 형성 된다.

결국.
권위에 호소하거나
담당을 세운다거나
규칙을 공표한다고하여
결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렇게해서도 분명
어떤 사회. 조직의 특이한 문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그 '문화'는 아닐 것이다.

..

그 문화 보고 싶으면
그 문화가 되어 살아내고
꽃 피워 향기를 내야 한다.

아..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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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예수님과 관계있는 척하면서
뭔가 요상하게 다른.
그날이 다가온다.

싼타가 온다.
가짜가 온다.

희한하게도 싼타는 늘 도둑질할때의 복장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확 티나는 빨간 옷을 입고 우리의 지갑과 크리스마스의 주인으로 부터 모든걸 앗아가려는 웃음띈 얼굴을 하고 있다. 고 막 주장하는 1인.

싼타의 크리스마스와
예수의 성탄절이
어떻게 다른가?

첫째. 12월 25일은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의 동지제일 이었다.
그들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짓날 태양이 태어났다고 믿었다.
A.D.345 년에 갑자기 예수님의 생일이 된다.

둘째. 산타의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물론 성 니클라우스라는 성자가 가난한 이들을 구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의 크리스마스의 산타는
좀 다르다.

어쩌면 이 노래가 잘못일수도 있다.

"울면안돼~울면안돼~
싼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겐
서언물을 안주신데요~"
이 앞부분의 가사는
산타를 거의 신이라 묘사하고 있다.

"잠잘때나 일어날때
짜증낼때 장난할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것을 알고계신데."

싼타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잘한 아이들에게 주는 상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물이 아니다.

자격없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내어주려 오신 예수님의 선물(은혜)과 다르다.

싼타가 크리스마스를 장악했다는 것은
그리고, 선물이 어떤 댓가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 둘은 그야말로 정확히 예수를 반하고 서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싼타에게 선물을 받는 날로
배우고 알아간다.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라고 배우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생일날 그리 기뻐하기가 좀 어색하다.
그 어린 아기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듯이 자신의 주검이 올려질 돌무덤과
똑같이 생긴 돌로된 말밥통에 얹혀진다.

이거슨 당시 아기 예수가 태어나자마자 올려 졌다고 볼 수 있는 그런 말밥통. 말구유인 거시다.


↑↑↑↑↑ 당시 말구유

몰랐으면 몰라도.
이미 그 끝을 아는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그 아기를 보고
마냥 기뻐할 일인가? 말이다.

친절하게도 사람의 유해가 놓여 있는 이거슨 앞 사진의 말밥통과 거의 똑같이 생겨먹은 돌 무덤이다. 말구유를 나무떼기로 만든걸로 묘사한 여러 성화가 있는데 고증도 성경적 아귀도 맞쳐보지 않은 막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 당시 돌무덤

다시 시간을 돌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 앞에 설수 있다면
과연 웃으며 축하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예수가 이 땅에 어떤 왕으로 오셨는지
알고서도 말이다.

오히려 사망을 이기고 일어나신 부활절을
더 기념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당신과 나를 위해
죽으러 태어난 아기.
예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를 기쁨으로 즐기려면
최소한 그날 태어난(절대 그날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 아기의
이야기를 알고나 있어야 할 일 아닌가.

p.s.
싼타의 옷이 붉은 색인 이유를
그리스도의 보혈에서 찾는 이는 없을테지만,
분명히 밝혀 두자면
싼타는 1931년 코카콜라가 겨울 마케팅을 하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히기 전까지는 초록색 옷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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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그 이름에 닮긴 성경 요약.

1 아브라함 : 무리의 아버지
2 이삭 : 웃음
3 야곱 : 발꿈치를 잡은자. 대신하는자, 밀쳐내고 들어앉다. (창세기에서의 사탄을 상징)
4 유다 : 유명한,저명한, 손을사용하다. 던지다, 고백하다.
5 베레스 : 분열. 터져나오다. 자라다. 증가하다.
6 헤스론 : 마당. 마을. 말뚝으로 둘러싸다.
7 람 : 높다. 일어나다. 자신을 높이다.
8 아미나답 : 관용의 백성, 자원하는 백성
9 나손 : 복술사. 경험으로 배우다. 열심히 관찰하다.
10 살몬 : (옷)입힘. 닮다
11 보아스 : 유력자
12 오벳 : 종, 섬기다. 봉사,경작하다.
13 이새 : 실재, 현존, 존재, 뛰어나다. 두드러지다.
14 : 다윗 : 사랑함


15 솔로몬 : 평화로운, 안전한 
16 르호보암 : 백성을 번성케 함.
17 아비야 :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
18 아사 : 치료
19 여호사밧 : 여호와께서 판단하심
20 요람 : 여호와께서 일으키심
21 웃시야 : 여호와의 능력
22 요담 : 여호와는 완전하시다
23 아하스 : 소유자, 분배하다, 잡다. 제지하다.
24 히스기야 : 여호와로 강해짐, 강하게하다.
25 므낫세 : 잊게하는. 잊어버리다. 무시하다
26 아몬 : '훈련'의 의미에서 길리운자, 양육하다.
27 요시야 : 여호와께서 기초를 두심, 여호와께서 그를 지지 하심
28 여호야긴 : 여호와께서 세우실 것이다.

*바빌론 : 혼란

29 스알디엘 : 내가 하나님께 간구했다.
30 스룹바벨 : 바벨론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
31 아비훗 : 위엄의 아버지, 아비의 영광
32 엘리아김 : 하나님이 세우심
33 아소르 : 돕는자, 둘러싸다, 방어하다, 구원하다.
34 사독 :공평, 의롭다. 의로운 상태가 되다.
35 아킴 : 지혜. 여호와께서 일으키실 것이다.
36 엘리웃 : 하나님은 나의 찬송. 위엄의 하나님
37 엘르아살 : 신의 도움. 하나님은 돕는자 이시다.
38 맛단 : 선물. 선물을 주다. 보복하다. 일어나게 하다.
39 야곱 : 발꿈치를 잡은자. 대신하는자, 밀쳐내고 들어앉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상징)
40 요셉 : 그가 더할 것이다. 여호와가 더해주심
*41 마리아 : 반항적으로. (맛이) 쓰다. 격동시키다. 변화하다. 불손종하다. 거역하다.
42 예수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 * *

하나님은 '이름'을 선포하여
존재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름' 짓는 일을 맡기신다.

그 '이름'에 전부 담겨있다.

----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심이.. 참...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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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 of Image

묵 상/세 상 2017.08.21 17:05

현 세대를 말하자면 가히 "이미지의 시대(Age of Image)"라 할만 하다.


아직까지 제품의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보여주는 것을
'상세이미지' '상품페이지' 정도라 여기고 있다면
사당한 시대 착오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금의 '이미지'란 것은 '실체'를 부연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정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소비의 대상, 주제 심지어 전부라고 할만하다.

물론 아무 이미지는 안된다.

내가 돋보이고,
내가 좀더 나아 보이고,
내가 좀 다른나 처럼 보이는
그런 이미지를 시간을 내서 찾아가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파는 것이 물건이든 먹거리든 사회적 가치든 어떤 무형의 서비스든 상관이 없다.
나를 더 "그럴듯한 나"로 보이고, 느끼고, 경험하게만 해 준다면
그곳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만다.

이것은 이전 어떤 세대에 비해 상당한 스펙을 가지고도
고용불안을 겪는 현세대의 심리 반영이며,
현실보다 가상의 공간과 만남이 더 익숙한 N세대 이후의 두드러진 증상이라 여겨진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모델같이 예쁜 아이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인스타 이미지들에 열정적으로 팔로우를 한다.
그들의 '전투육아' '독박육아' 와는 사뭇다른 이미지, 나의 워너비를 소비하려는 것이다.

소위 인플루언서들이라 불리는 인스타그래머들이 그들의 팔로우를 기반으로 창업하고 성공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단적으로 예전에는 옷을 잘만드는 사람이 옷장사를 했다.
그 후에는 옷을 잘 파는 사람이 옷장사를 잘했고,
이제는 이미지를 잘 만드는 사람이 옷장사를 잘한다. 

심지어 미디어에 비치는 이미지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시대지 않은가.
실체는 중요치 않다.
그가, 그곳이, 그것이 가진 이미지를 소비하므로써, 그 대상의 가치에 편승하려는 심리를
instagram 이나 facebook 은 자신들의 사업에 그대로 적용하여 성공한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자연 풍광을 멋드러지게 그리거나 찍어 공유하던 시대가 있었다면
굴뚝이나 절벽 끄트머리에 서서 셀카를 찍어 공유하는 세대이다.

이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더이상 대상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스타벅스가 주는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으며
애플이 주는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불하고 있던 물건의 값에는
원가와 제조비용과 유통비용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이미지의 값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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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아빠-!

묵 상/관 계 2017.02.19 23:39




아넬이는 놀다가 엎어지면
"아앙~!"하고 운다.

이 아이는 자신이 당한 이 상황에
원인을 분석하거나 적절한 처치를
구하지 않는다.

그저.
아빠. 엄마가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운다.

어떻게든 자신을 도울 수 있을거라는 전적인 믿음. 그래서 그냥 부모를 찾는다.

반면.
어른이 되버린 나는. 우리는.
너무 많은 방법을 안다.(고 여긴다.)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고
구체적인 방법을 요구한다.

이쯤되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같은 능력'이라면 뭣이라도 좋으니 구하고 붙들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내 능력을 벗어난 어떤게 다가오기라도 하면
'아-! 하나님이 주신건가부다!' 하고
심각한 오바를 하게 된다.

실은 공중권세잡은 사탄도 그만한 능력을 입고 다가올 수 있다.

기도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 있다.
내 처지가 그렇다.
고통이, 고난이 깊어지면 기도가 나온다.
인간이 그렇다.

그런데.
이 극심한 영적. 혼적. 물적. 궁핍 중에 나를 보는 아버지. 하나님은.

아넬이가 나를 부르던 그 소리.
"아빠-!" 하나만 듣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구구절절히 어찌어찌 해달라는 나는
하나님을 종 부리듯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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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시대가 바뀌는 순간이 있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정해지고 통보된다.


종종 가인의 살인은

아벨의 순종과 가인의 불순종이라는 프레임으로 쉽게 설명되곤 하지만

아벨이 태어나기 전까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느 날 자신의 재물이 아닌

아벨의 죽은 양을 받으시는 그 순간 이전까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나. 

최소한 스스로 '버림받은 자'라는 느낌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어떠한가.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모든 축복은 사냥꾼인 에서가 아닌, 목동 야곱에게 모두 쏟아진다.

만약. 야곱이 어머니에 의해 피신되지 않았더라면

가인이 그랬던 것처럼 야곱은 에서에게 죽임을 당했으리라.



예수를 맞닥뜨린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은 어땠을까?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예레미야 16:16 
/

이른바 '목자의 시대'에 선포된 말씀을 통해 
그다음은 '어부' 그다음은 '포수'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목자의 시대이자 베드로, 요한 등의 어부를 부르러 나가기 전.

천사는 들판에 있던 목동에게 나타나 소식을 전한다.


이 새로운 변화의 때를 듣지 못한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은

마치 '가인'과 '에서'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고 싶었고, 실제로 죽였다.



'어부의 시대'를 지나 '성령의 시대'를 상징하는 '포수(사냥꾼)의 시대'는 어떠한가?

누군가의 눈에는 또 어떤 이가 몹시도 못마땅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분명한 계시와 부르심과 택하심과 분명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부류로부터 박해와 고초를 겪을 수 있다.


예루살렘 성에는 많은 문들이 있었다.

그 중 


감옥문 - 양문 - 함메아 망대 - 하나넬 망대 - 어문 - 옛문 

더보기


으로 연결된 부분이 나온다. 


양문과 어문 사이에 함메아(100) 과 하나넬(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라는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정확하게 계시하고 있다. 이는 목자의 시대와 어부의 시대를 정확하게 가르는 시대적 선포였다.


이후 주목할 부분은 예레미야서에 언급된 포수의 시대와 연결지을 수 있는 '옛문(old gate)'이고, 이것은 오래전 택함 받지 못했으나 여호와 앞에 용감했던 영걸 니므롯(창10:9), 익숙한 들사람 에서(창25:27)를 떠 올릴 수 있다. 


감히 '짐승의 시대' 라 불릴만한 이 마지막 때에 그들을 두려워 하지 않는 '포수'들이 필요한 이유는 너무나 자명해 보이고, 이미 그 시대를 누비고 있는 시대의 택함 받은 자들은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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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