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문을 통과해

그 성 예루살렘.

유리알 같은 정금 거리에 서 있다.


이 순간 세상에서 나를 증거하던

어떤 신분적 상징도 허용되지 않는다.


상징은 고사하고. 옷이나 몸도 없다.


온전히 나를 구성하고 있는

진정한 실존만이

발가벗기운채 서 있다.


이 순간은 마치 영원같고

실로 영원히 지속 될것이다.


발 아래 드넓게 펼쳐진 정금 바닥.

사방면에 2천 2백 킬로미터나 솟아 오른 정금 벽.

태양도 위용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광채가 가득한 그 성.


이 성안 모든것은 그 자체로.

내 발가벗겨진 실체를 여과 없이 대면하게 한다.


어쩌면 너무 생뚱맞고, 너무 흉측하고, 너무 부끄럽고

너무 더럽고, 너무 무겁고, 너무 소름끼치는 내 자신을 

외면할 방법이 없다.

지독한 쪽팔림. 자기경멸. 후회. ...
영원할지도 모를 이불킥.


그 와중에도 남김없이 정련될 

마지막 내 안에 찌꺼기.


온우주의 자원을 다 사용해서라도 

나를

순도 100%의 유리알 같은 정금으로 만드실

그 능력. 

하나님.


그 능력을

여기서도 거부한다면

여기는 분명 영원토록 

지옥이 될 수도 있겠다.


혹은


영원토록 

그 따스하고 사랑스럽고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누릴 수도 있는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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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새예루살렘성의 크기와 모양을

지구본과 비교하여 올려놓은 사진을 찾았다.


진짜 저런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될까?

또는 동시에 어떤것을 상징하는 비유는 아닐까?




마지막 일곱 재앙이 담긴 일곱 대접을 든 일곱 천사 가우데 하나가 와서

"나오너라. 내가 네게 어린 양의 아내 될 신부를 보여 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에 사로잡힌 나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에게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9-10]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성을

어린양의 아내 될 신부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양(=예수)의 신부 = 거룩한 성 예루살렘"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한 정사각형이었습니다. 

천사가 잣대로 성을 재어 보니 

길이와 폭과 높이가 다 같이 약 2,200 킬로미터였습니다.


그리고 성벽 두께를 재어 보니 약 65미터 였는데

이것은 천사의 측량이지만 

사람의 측량 기준에 의한 것입니다.


성벽은 전체가 벽옥으로 만들어져 있엇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벽의 주춧돌은 모두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 첫째 주춧돌은 벽옥으로, 둘째는 청옥, 셋째는 옥수, 넷째는 비취옥,

다섯째는 호마노, 여섯째는 홍옥수, 일곱째는 감람석, 

여덟째는 녹주석, 아홉째는 황옥, 열째는 녹옥수, 열한째는 히아신드,

열두째는 자수정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또 열두 개의 성문은 각각 하나의 거대한 진주로 되어 있었으며

성의 거리는 맑은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16-21]



거룩한 성 예루살렘 

  각변의 길이가 2,200Km 인 입방체

  벽두께 65미터

  각 기초는 12가지 보석

  문은 거대한 진주

  성의 거리는 순금


인간의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들수 없는 것,

인간이 접근, 침입 할 수 없는 성.


이것이 예수의 신부, 하나님의 신부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 성안에는 성전이 없다고 한다.


나는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성의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22]


이상한 일이다.

어린양의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신다면서

그 안에는 또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가 중심에 계신다고 한다.


이것이 계시록을 통해 요한 사도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 거듭난 개인과 단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에게는 어떤 수준의 거룩함, 완벽함, 순결함, 고귀함이 요구된다는 것인가?

과연 우리 중 그런 모습에 다다를 자가 있을까?


..


다시 한번 말씀에 주목해 본다.


 마지막 일곱 재앙이 담긴 일곱 대접을 든 일곱 천사 가우데 하나가 와서

"나오너라. 내가 네게 어린 양의 아내 될 신부를 보여 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에 사로잡힌 나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 하나님에게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9-10]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땅에서 올라간 것도, 땅에서 난것도,

사람이 만들거나 사람이 변화된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다.


높고 거대한 성벽이지만, 

그렇다고 문이 없는것이 아니다.

각 벽마다 3개씩. 총 12개의 진주 문.


2013/10/16 - [묵 상/생 각] - 오직 한 길


진주는..


지꺼기와 같은 나를 위해 피와 살을 내어주며 품고 계신 예수.

오직 그 길, 그 문이 되신
예수의 용납과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 아담을 위해 가죽옷을 해 입히셨던 하나님이

이번엔 우리를 위해 새 옷. 


이 새 예루살렘 성은

우리를 위해 내려주신 새 의복인 것이다.

새로운 정체성인 것이다.


첫 아담이 에덴을 쫓겨날때 입었던 

짐승의 가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진주문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이 새 신부의 옷을 입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아의 

전적인 고백, 수긍, 회개... 감사.


그 언젠가 

하늘에서 거대한 금빛 찬란한 입방체의 성이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우리에게 요구된 삶. 

당부된 삶이 있다.


진주문을 통과해

새 옷을 입고 살아라.


이제 여러분은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밤이 거의 지나고 낮이 가까웠으니

이제는 악한 생활을 버리고

믿음으로 빛된 생활을 하십시오.


낮의 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처럼

단정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방탕과 싸움과 시기하는 일을 버리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로마서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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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순간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고 경이롭고
눈물이 질끔 날 정도로 감사한.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첫번째 세상에 비하면
작금의 지구는 전적으로 훼손된 상태이지 않은가.

그랜드캐년의 웅장함에 감탄할 수 있지만
그 또한 타락과 심판의 증거이지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이거나 대자연의 거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상태 이대로의 세상을 두고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것이 하나님이 지으셔서..가 아니다.
절대로 이 수준이 아니시다.
겁나 망가져도 이정도인 점은 인정할만 하지만. 여튼.

...

"내가 보기에도 멋지네요. 아름다와요."
이런 것이 아닌

'판단'이란것이 온전히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똥이든 된장이든
모양과 향이 어찌 되었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
라는 전적인 인정과 고백.

창조주와 피조물의 온전하고 온전한 위치와 자세.
그것만이 진짜 찬양.

#찬양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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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때도 안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여 말려 죽이신 예수님.
바로 그 전날엔.
아래와 같은 일이 있었다.

.........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거기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 ‘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성전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뚝발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과 
성전에서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소?” 하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렇다. 너희는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을 완전하게 하셨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시고

마태복음 21:12‭-‬16‭

........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아직 때가 차지도 않은 어린 아이들을
그들의 의심없는 믿음에 근거하여 핍박한다.

사람의 의심없는 믿음. 
그것으로 산 생명이 말라 죽기도하고
- 이후 그들이 못박아 죽인 예수가 그 예가 되듯이 -
거대한 산을 들어다 바다에 빠뜨려버리는
실로 엄청나고도 끔찍한 일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21:22 KLB

이 말씀은..내게.. 오늘. 
만약 믿음이라는 것이 실로 이렇다 한다면!
너희는 세상이 깜놀할 거대한 일에만 몰두하겠느냐?
너희는 생명을 죽이는데 쓰겠느냐?

너희는 그 믿음으로 무엇을 구하겠느냐?
라는 질문으로 들린다.

동시에.

너희 복음의 전진을 막을 저 산들.
저 종교인들의 무리들.
그들을 향하여 유효한 믿음의 선포를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하심이 아니었을까?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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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청년의 결국은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으러 나온 이 청년에게 

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했을까?


첫째로 생각해 볼것은

청년의 질문에 "제가" 라고 한 부분이다.

모든 율법을 성실히 지켜온 청년은 자신의 행위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 "사람이 어떻게 살면.. "이라든지 "영생을 얻으려면.." 이라고 묻지 않고

"제가" 라고 말을 꺼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풍부한 재물 또한 율법의 준행에서 기인한 것이라 

믿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아.. 네가 원인이 되고 싶구나..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거라..' 라는 속 뜻이 아니셨을까?



두번째 청년의 질문에는 "무슨 선한 일"을 하면..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청년의 마음에는 영생과 사람의 선한 행실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국 구원과 영생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행위에 달려있다는 믿음을 고백한 셈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만약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을 많이 구제해 주거라.."

라고 했다면, 

청년은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 팔아" 나눠 주라고 하신다.

그 요청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번째 관점은 이것이다.

예수님의 요구. 

"가난한 자들에게 네것을 다 팔아 나눠 주고 오너라."


행위로 선하게 되고, 행위로 구원을 얻고, 행위로 영생을 얻으려 했던 

청년의 사고체계로 유추해 보자면, 

가난한 자들은 그 행위가 가난해 마땅했을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의로운 재물이 그곳으로 흘러가는것이 몹시도 불쾌했을 것이다.


네번째 살펴볼 것은.

22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라는 구절인데.


이 청년은 영생과 자신의 재물을 저울질 했을 때, 아직은 '재물' 쪽으로 기울어 진 것이다.

근심한 이유가 재물이 많은것이었다.


보이고 만져지고 누릴 수 있는 청년의 많은 재물은

보이지 않는 하늘 보화와 영생과 바꿀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청년의 신은 하나님이 아닌, 재물이었다.



4 복음서 중 마태복음은 특히 유대인과 유대의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록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일컬음 받던, 율법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약속 되신 예수님은

죽여 마땅한 신성모독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 마태복음의 이 부자 청년 이야기는

바로 율법적 행위에 근거한 구원. 신앙생활에 대한 경종이었다.


예수를 통한 오직 은혜의 선물. 구원.

사람의 행위. 사람 그 자체가 아무런 희망 없음의 선포하는 십자가.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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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
1.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2. 사랑이 하나님이다.
가 전혀 다른 의미이듯이.

1. 하나님은 모든이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
라는 말과
2.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
라는 말의 의미는 다르다.

전자(1.)는 사실이고
후자(2.)는 사실을 뒤집어 오해한 것이다.

...

구원받지 못한 수 많은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지옥과 천국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 놓지 못함을 본다.

하지만, 모르는것은 모르는 것이고,
아는것은 아는것이다.

내가 아는 사실은
하나님은 모든이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가지셨고, 의지가 있으시고,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실제하는 지옥에 관한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누군가는 예수님과 구원 없이 죽는다. (그렇게 여겨지는 수없이 많은 죽음이 있다.)
그들은 마음으로 믿지 못했고,
입으로 시인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자동 지옥행인가?





...

자. 어려운 이야기는 잠시 내려두고..
이제 상식이 되어 버린 빛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과학은 빛 보다 빠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이 우주의 크기를 측정해 보니
137억년 쯤 된다고 한다.
빛의 속도로 137억년 쯤 가야 하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만하다.

그런데.

만약 빛보다 빠른 속도의 폭발이 있었다면?
만약 하나님이 그런 능력이 있으시다면?
그래서 137억광년에 걸친 이 광할한 공간을
단 1초에 펼칠 수 있다면?

...

자.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작가의 손에 한 주인공의 위급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1시간 이상 숨쉴만한 공기가 없고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 과연 작가에게도 그럴까?
작가에게도 그의 작품속 주인공을 살릴 방법이 과연 없을까?

작품속 주인공에게 주어진 1시간이
작가에게도 1시간의 같은 시간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작가는 이 장면의 이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작가 인생 전체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모든 방법이 있다.
심지어 이 소설이 판타지 장르라면 일은 더욱 쉬워진다.

...

자. 다시 이 순간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한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 있다고 하자.

과연 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과 능력이 없다고 믿는가?

...

자. 지옥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천국과 마찬가지로 지옥은 살아서 가는 곳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국을 끌어와, 혹은 침노해 누리듯이
지옥 또한 끌어와 침노해 경험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인성 수준을 끌어내려 상상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관계없는 어떤 순간을 떠 올릴때 마다
지옥은 순간순간 우리에게 엄습한다.

...

자.
죽음을 이기셨다는 예수님의 선포를 돌려서 보자.
다 이루셨다는 예수님의 선포를 돌려서 보자.

전능하신 하나님.
그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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יְהוּדָה

유다 = 찬양
= יְהֹוָה (여호와) + ד (.달렛 =gate. 문)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9 KRV)



찬양
= 하나님 문
= 하나님 예수
= 하나님 그가 구원하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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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밭갈고 씨를 뿌리지 않고
씨 뿌리고 밭을 간다고 한다.
왜 그러는진 몰라도 그런다고 한다.

밭을 다 갈아놓고 씨를 뿌리면
버려지는 씨가 그만큼 적어질거 같지만
여튼 성경적 가르침은 씨뿌리면 기경을 한다.


씨는 무엇인가?
천국의 복음 아닌가. 천국 그 자체 아닌가.
그것을 씨앗의 형태로 보내신다.

말씀이 육신-예수-되어 이땅에 오신 사건.
그것은 천국의 씨앗이었다.
그날부터 이땅은 크고 작게 진동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슨 씨앗을 어디다 뿌릴 것인가?

여전히 씨가 뿌려지고
땅이 기경되고
생명을 싹 틔워야할 땅 들이 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천국의 DNA를 심으셨다.
우리가 그 땅에 심겨야할 씨앗이라고 하신다.

이제 나의 씨앗을
그들에게 어떻게 뿌려야할까.

예수는
베드로는 요한은 바울은
그 씨앗을 어떻게 뿌렸나..

...

어쩌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것은
땅이나 씨가 한정된 자원일때 그리하는것 아닐까?

만약
씨가 무한히 있고
씨가 뿌려져 기경하는 땅만큼
자기 땅이 된다고 한다면

최대한 아무땅이나
최대한 멀리 던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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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dna, 기경, , 천국
환영하는 문화가 있었으면 해요~
라고 건의했더니.

아.  좋겠네요..
누가 담당하면 좋을까요..?

라는 뜨악스런 반응을 본적이 있다.

당시의 건의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걸
수 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문화는
Top - Down 으로 형성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Bottom - Up 인가..?
두 경우 모두 적지않은 반향과 고통을 수반한다. 필수적으로.
(한쪽을 독재라고 하고. 다른 한쪽을 쿠데타-좋게 말해 혁명-라고 한다.)

오히려 건강한 문화는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In - Out 의 방식이다.

내 안에 그 문화가 있고
내가 그 문화 안에 있을때.
(완전히 쩔어 있어야 한다.
근처만 가도 향기가 진동할 정도로..)
그러면 그것은 자연스레 바깥으로 전염. 잉태. 발화 된다.

물론.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쁜 것에 쩔어 있으면. 문화가 되기 이전에 상당한 핍박을 감수 해야 한다.
범부들은 그 향기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천국이 하늘 위 저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면,
문화는 Top - Down 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천국은 이 땅에 사람 속에 심기는 전략을 선택했다.

마리아 안에.
예수 안에.
그리고 제자들 안에.
거듭난 자들 안에.
씨앗으로 심긴다.

정말 작아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겨자씨 크기의 문화.
우매하기 짝이 없어 보이고. 거의 가망도 없어보이는 그 전략.
전도의 미련한 것.


...

천국만 그렇지는 않다.
지옥도 마찬가지로 위에서 어떤 문화를 뿌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 안에 두려움을 심는다.



그래서 그 두려움이 발아하여 꽃 피우고 열매맺기를 기다린다.
그들이 창궐해도 어떤 문화가 형성 된다.

결국.
권위에 호소하거나
담당을 세운다거나
규칙을 공표한다고하여
결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렇게해서도 분명
어떤 사회. 조직의 특이한 문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그 '문화'는 아닐 것이다.

..

그 문화 보고 싶으면
그 문화가 되어 살아내고
꽃 피워 향기를 내야 한다.

아..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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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예수님과 관계있는 척하면서
뭔가 요상하게 다른.
그날이 다가온다.

싼타가 온다.
가짜가 온다.

희한하게도 싼타는 늘 도둑질할때의 복장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확 티나는 빨간 옷을 입고 우리의 지갑과 크리스마스의 주인으로 부터 모든걸 앗아가려는 웃음띈 얼굴을 하고 있다. 고 막 주장하는 1인.

싼타의 크리스마스와
예수의 성탄절이
어떻게 다른가?

첫째. 12월 25일은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의 동지제일 이었다.
그들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짓날 태양이 태어났다고 믿었다.
A.D.345 년에 갑자기 예수님의 생일이 된다.

둘째. 산타의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물론 성 니클라우스라는 성자가 가난한 이들을 구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의 크리스마스의 산타는
좀 다르다.

어쩌면 이 노래가 잘못일수도 있다.

"울면안돼~울면안돼~
싼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겐
서언물을 안주신데요~"
이 앞부분의 가사는
산타를 거의 신이라 묘사하고 있다.

"잠잘때나 일어날때
짜증낼때 장난할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것을 알고계신데."

싼타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잘한 아이들에게 주는 상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물이 아니다.

자격없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내어주려 오신 예수님의 선물(은혜)과 다르다.

싼타가 크리스마스를 장악했다는 것은
그리고, 선물이 어떤 댓가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 둘은 그야말로 정확히 예수를 반하고 서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싼타에게 선물을 받는 날로
배우고 알아간다.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라고 배우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생일날 그리 기뻐하기가 좀 어색하다.
그 어린 아기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듯이 자신의 주검이 올려질 돌무덤과
똑같이 생긴 돌로된 말밥통에 얹혀진다.

이거슨 당시 아기 예수가 태어나자마자 올려 졌다고 볼 수 있는 그런 말밥통. 말구유인 거시다.


↑↑↑↑↑ 당시 말구유

몰랐으면 몰라도.
이미 그 끝을 아는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그 아기를 보고
마냥 기뻐할 일인가? 말이다.

친절하게도 사람의 유해가 놓여 있는 이거슨 앞 사진의 말밥통과 거의 똑같이 생겨먹은 돌 무덤이다. 말구유를 나무떼기로 만든걸로 묘사한 여러 성화가 있는데 고증도 성경적 아귀도 맞쳐보지 않은 막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 당시 돌무덤

다시 시간을 돌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 앞에 설수 있다면
과연 웃으며 축하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예수가 이 땅에 어떤 왕으로 오셨는지
알고서도 말이다.

오히려 사망을 이기고 일어나신 부활절을
더 기념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당신과 나를 위해
죽으러 태어난 아기.
예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를 기쁨으로 즐기려면
최소한 그날 태어난(절대 그날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 아기의
이야기를 알고나 있어야 할 일 아닌가.

p.s.
싼타의 옷이 붉은 색인 이유를
그리스도의 보혈에서 찾는 이는 없을테지만,
분명히 밝혀 두자면
싼타는 1931년 코카콜라가 겨울 마케팅을 하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히기 전까지는 초록색 옷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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