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말은 때로는 모든 행위와 비교할 때

너무나 저급한 전달 수단이 아닐 수 없다.

아무기 가려 하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할지라도

받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그것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기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 안에 온전히 상대방을 향한 사랑의 마음과

온유함이 있다면,

가장 저급한 표현 수단인 말. 보다는

다른 행동으로 그에게 충분이 마음이 표현 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말은 채찍이라 하고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능력이라 하였다.


능력은 다이나마이트의 어원인 'dunamis' 이다.

다이나마이트와 채찍 중

어느것이 더 강력한 능력인지 묻고 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속히 여러분에게로 가서,
그 교만해진 사람들의 # 이 아니라 #능력 을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 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 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채찍 을 들고 여러분에게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랑과_온유한_마음 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고린도전서 4: 19-21

#말 = #채찍
#능력 = #사랑과_온유한_마음





2014/02/28 - [묵 상/생 각] - 아들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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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추석을 맞이해

5시간 이상 고속도로, 국도를 번갈아 가며 달려보니

여전히 우리나라 곳곳에는 빈땅이 널려 있더라.. 


대체 이 좋고 너른 땅을 두고

어쩌자고 사람들은 도시, 그 비싼 아파트에 꾸역꾸역 모여 살게 되었을까.


물론 나조차도 도시 이외의 삶에 대해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으니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마는..


다시. 성경에 기록된대로

온땅에 흩어 버리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또 한가지. 언어까지 혼잡케 하신 연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한국 사람들끼리도 다음과 같은 경상도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


"뭐 문나?"

"뭐 문노?"

.

.

.



먼저 창세기 11장 3절을 보면.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온 지면에 흩어지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와 반하여 사람들의 계획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성읍 곧 도시를 만들자.  

2. 그리고 하늘만큼 높은 탑을 만들자.

3. 그것들로 우리의 이름을 드 높이자.

4.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

그렇다면, 당시 성읍은 어떤 모양이었고,

탑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재료는 돌아니고 벽돌, 진흙 아니고 역청이라고 (3절) 기록 되어져 있다.


먼저 탑을 보자. 

바벨에 쌓아 올렸다는 그 탑은 현재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몇 장의 상상화로 존재하는 탑은 이렇게 생겼다.



잘 다듬은 벽돌로 정교하게 쌓았을 것이다.

아래는 넓게 위로 갈 수록 좁아지게.

아마도 최대한 높이 쌓기 위해 그 기초면의 넓이는 상당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그 이후에 좀 작게 세워진 다른 탑들을 살펴 보자.

대동 소이하게도 공통적인 특징은 아래가 넓고 위가 좁다.

또 한가지는 

집 위에 집이 얹혀진 형상이다.


성읍과 그 가운데 탑.

이것을 건설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의도.


단순히 하나님 만큼 높아지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함이 아닌듯 하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모여사는 것 이상의 통제가능한 권력.

그리고 상하 수직적인 지휘체계를 갖기 원한 것이다.


사람이 무심코 그린것, 내 뱉은 단어 하나에도 그 사람의 

가치관,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긴다.

하물며 이런 거대한 공사라면 그 형태만 보아도, 그들이 추구했던 세계의 밑그림을 알 수 있다.



 

  í™©ë£¡ì‚¬ì§€ 9층 목탑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들은 사람 위에 사람이 살고,

그 정점에 하나님. 곧 그들의 신적 권위를 닮은 단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이 작당을 한 것이다.


그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들만의 통제 가능한 세상을 창조하려 했던 것이다.


새로운 언약으로 오셨던 '예수', 곧 하나님 자신은

사람을 친구, 형제, 가족 이라 불렀다.

심지어 큰자가 작은자를 섬길것이라는 예언대로 모든 이를 위해 대신 죽음이라는 

가장 밑바닥 자리를 차지 하셨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시편 133편)


하나님은 사람이 형제로 살길 원하셨다.

(물론 형제간에도 서열을 문제 삼는이도 적진 않다.)

 

사람 위에 사람이 없고, 사람 아래에 사람이 없는 세상을

하나님은 계획하고 창조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 드넓은 땅에 최대한 흩어져 살길 원하셨다.


결국, 언어를 혼잡케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고,

이 모의 작당을 멈추게 하셨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의 도시는 또 그 당시를 닮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그들이 꿈꾸던 성읍과 탑은

오늘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도시의 효율 만을 위한 것인가?

그 안에 사람은 사람으로 살 고 있는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과연 우스게 소리일 뿐일까?










창세기 / 개역개정

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11: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1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창세기 / 쉬운 성경

11:1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언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11:2 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겨 가며 시날 땅에서 평야를 발견하고,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11:3 그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굽자.” 

       그러면서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습니다. 

11:4 그들이 또 서로 말했습니다.

       “자, 우리의 성을 세우자. 그리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 

       그래서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11: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쌓고 있는 성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습니다. 

11:6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 백성이고, 그들의 언어도 다 똑같다. 

       그래서 이런 일을 시작하였는데, 이 일은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들은 하려고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11:7 그러니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 놓자. 

        그리하여 그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11:8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온 땅 위에 흩어 놓으셨습니다. 

         그들은 성 쌓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11:9 여호와께서 온 땅의 언어를 그 곳에서 뒤섞어 놓으셨으므로, 

         그 곳의 이름은 바벨이 되었습니다. 또한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온 땅 위에 흩어 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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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진주문을 통과해

그 성 예루살렘.

유리알 같은 정금 거리에 서 있다.


이 순간 세상에서 나를 증거하던

어떤 신분적 상징도 허용되지 않는다.


상징은 고사하고. 옷이나 몸도 없다.


온전히 나를 구성하고 있는

진정한 실존만이

발가벗기운채 서 있다.


이 순간은 마치 영원같고

실로 영원히 지속 될것이다.


발 아래 드넓게 펼쳐진 정금 바닥.

사방면에 2천 2백 킬로미터나 솟아 오른 정금 벽.

태양도 위용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광채가 가득한 그 성.


이 성안 모든것은 그 자체로.

내 발가벗겨진 실체를 여과 없이 대면하게 한다.


어쩌면 너무 생뚱맞고, 너무 흉측하고, 너무 부끄럽고

너무 더럽고, 너무 무겁고, 너무 소름끼치는 내 자신을 

외면할 방법이 없다.

지독한 쪽팔림. 자기경멸. 후회. ...
영원할지도 모를 이불킥.


그 와중에도 남김없이 정련될 

마지막 내 안에 찌꺼기.


온우주의 자원을 다 사용해서라도 

나를

순도 100%의 유리알 같은 정금으로 만드실

그 능력. 

하나님.


그 능력을

여기서도 거부한다면

여기는 분명 영원토록 

지옥이 될 수도 있겠다.


혹은


영원토록 

그 따스하고 사랑스럽고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누릴 수도 있는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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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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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새예루살렘성의 크기와 모양을

지구본과 비교하여 올려놓은 사진을 찾았다.


진짜 저런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될까?

또는 동시에 어떤것을 상징하는 비유는 아닐까?




마지막 일곱 재앙이 담긴 일곱 대접을 든 일곱 천사 가우데 하나가 와서

"나오너라. 내가 네게 어린 양의 아내 될 신부를 보여 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에 사로잡힌 나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에게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9-10]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성을

어린양의 아내 될 신부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양(=예수)의 신부 = 거룩한 성 예루살렘"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한 정사각형이었습니다. 

천사가 잣대로 성을 재어 보니 

길이와 폭과 높이가 다 같이 약 2,200 킬로미터였습니다.


그리고 성벽 두께를 재어 보니 약 65미터 였는데

이것은 천사의 측량이지만 

사람의 측량 기준에 의한 것입니다.


성벽은 전체가 벽옥으로 만들어져 있엇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벽의 주춧돌은 모두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 첫째 주춧돌은 벽옥으로, 둘째는 청옥, 셋째는 옥수, 넷째는 비취옥,

다섯째는 호마노, 여섯째는 홍옥수, 일곱째는 감람석, 

여덟째는 녹주석, 아홉째는 황옥, 열째는 녹옥수, 열한째는 히아신드,

열두째는 자수정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또 열두 개의 성문은 각각 하나의 거대한 진주로 되어 있었으며

성의 거리는 맑은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16-21]



거룩한 성 예루살렘 

  각변의 길이가 2,200Km 인 입방체

  벽두께 65미터

  각 기초는 12가지 보석

  문은 거대한 진주

  성의 거리는 순금


인간의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들수 없는 것,

인간이 접근, 침입 할 수 없는 성.


이것이 예수의 신부, 하나님의 신부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 성안에는 성전이 없다고 한다.


나는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성의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22]


이상한 일이다.

어린양의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신다면서

그 안에는 또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가 중심에 계신다고 한다.


이것이 계시록을 통해 요한 사도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 거듭난 개인과 단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에게는 어떤 수준의 거룩함, 완벽함, 순결함, 고귀함이 요구된다는 것인가?

과연 우리 중 그런 모습에 다다를 자가 있을까?


..


다시 한번 말씀에 주목해 본다.


 마지막 일곱 재앙이 담긴 일곱 대접을 든 일곱 천사 가우데 하나가 와서

"나오너라. 내가 네게 어린 양의 아내 될 신부를 보여 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에 사로잡힌 나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 하나님에게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9-10]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땅에서 올라간 것도, 땅에서 난것도,

사람이 만들거나 사람이 변화된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다.


높고 거대한 성벽이지만, 

그렇다고 문이 없는것이 아니다.

각 벽마다 3개씩. 총 12개의 진주 문.


2013/10/16 - [묵 상/생 각] - 오직 한 길


진주는..


지꺼기와 같은 나를 위해 피와 살을 내어주며 품고 계신 예수.

오직 그 길, 그 문이 되신
예수의 용납과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 아담을 위해 가죽옷을 해 입히셨던 하나님이

이번엔 우리를 위해 새 옷. 


이 새 예루살렘 성은

우리를 위해 내려주신 새 의복인 것이다.

새로운 정체성인 것이다.


첫 아담이 에덴을 쫓겨날때 입었던 

짐승의 가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진주문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이 새 신부의 옷을 입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아의 

전적인 고백, 수긍, 회개... 감사.


그 언젠가 

하늘에서 거대한 금빛 찬란한 입방체의 성이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우리에게 요구된 삶. 

당부된 삶이 있다.


진주문을 통과해

새 옷을 입고 살아라.


이제 여러분은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밤이 거의 지나고 낮이 가까웠으니

이제는 악한 생활을 버리고

믿음으로 빛된 생활을 하십시오.


낮의 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처럼

단정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방탕과 싸움과 시기하는 일을 버리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로마서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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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그런 순간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고 경이롭고
눈물이 질끔 날 정도로 감사한.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첫번째 세상에 비하면
작금의 지구는 전적으로 훼손된 상태이지 않은가.

그랜드캐년의 웅장함에 감탄할 수 있지만
그 또한 타락과 심판의 증거이지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이거나 대자연의 거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상태 이대로의 세상을 두고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것이 하나님이 지으셔서..가 아니다.
절대로 이 수준이 아니시다.
겁나 망가져도 이정도인 점은 인정할만 하지만. 여튼.

...

"내가 보기에도 멋지네요. 아름다와요."
이런 것이 아닌

'판단'이란것이 온전히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똥이든 된장이든
모양과 향이 어찌 되었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
라는 전적인 인정과 고백.

창조주와 피조물의 온전하고 온전한 위치와 자세.
그것만이 진짜 찬양.

#찬양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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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아직 때도 안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여 말려 죽이신 예수님.
바로 그 전날엔.
아래와 같은 일이 있었다.

.........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거기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 ‘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성전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뚝발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과 
성전에서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소?” 하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렇다. 너희는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을 완전하게 하셨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시고

마태복음 21:12‭-‬16‭

........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아직 때가 차지도 않은 어린 아이들을
그들의 의심없는 믿음에 근거하여 핍박한다.

사람의 의심없는 믿음. 
그것으로 산 생명이 말라 죽기도하고
- 이후 그들이 못박아 죽인 예수가 그 예가 되듯이 -
거대한 산을 들어다 바다에 빠뜨려버리는
실로 엄청나고도 끔찍한 일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21:22 KLB

이 말씀은..내게.. 오늘. 
만약 믿음이라는 것이 실로 이렇다 한다면!
너희는 세상이 깜놀할 거대한 일에만 몰두하겠느냐?
너희는 생명을 죽이는데 쓰겠느냐?

너희는 그 믿음으로 무엇을 구하겠느냐?
라는 질문으로 들린다.

동시에.

너희 복음의 전진을 막을 저 산들.
저 종교인들의 무리들.
그들을 향하여 유효한 믿음의 선포를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하심이 아니었을까?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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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한 청년이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청년의 결국은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으러 나온 이 청년에게 

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했을까?


첫째로 생각해 볼것은

청년의 질문에 "제가" 라고 한 부분이다.

모든 율법을 성실히 지켜온 청년은 자신의 행위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 "사람이 어떻게 살면.. "이라든지 "영생을 얻으려면.." 이라고 묻지 않고

"제가" 라고 말을 꺼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풍부한 재물 또한 율법의 준행에서 기인한 것이라 

믿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아.. 네가 원인이 되고 싶구나..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거라..' 라는 속 뜻이 아니셨을까?



두번째 청년의 질문에는 "무슨 선한 일"을 하면..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청년의 마음에는 영생과 사람의 선한 행실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국 구원과 영생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행위에 달려있다는 믿음을 고백한 셈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만약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을 많이 구제해 주거라.."

라고 했다면, 

청년은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 팔아" 나눠 주라고 하신다.

그 요청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번째 관점은 이것이다.

예수님의 요구. 

"가난한 자들에게 네것을 다 팔아 나눠 주고 오너라."


행위로 선하게 되고, 행위로 구원을 얻고, 행위로 영생을 얻으려 했던 

청년의 사고체계로 유추해 보자면, 

가난한 자들은 그 행위가 가난해 마땅했을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의로운 재물이 그곳으로 흘러가는것이 몹시도 불쾌했을 것이다.


네번째 살펴볼 것은.

22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라는 구절인데.


이 청년은 영생과 자신의 재물을 저울질 했을 때, 아직은 '재물' 쪽으로 기울어 진 것이다.

근심한 이유가 재물이 많은것이었다.


보이고 만져지고 누릴 수 있는 청년의 많은 재물은

보이지 않는 하늘 보화와 영생과 바꿀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청년의 신은 하나님이 아닌, 재물이었다.



4 복음서 중 마태복음은 특히 유대인과 유대의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록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일컬음 받던, 율법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약속 되신 예수님은

죽여 마땅한 신성모독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 마태복음의 이 부자 청년 이야기는

바로 율법적 행위에 근거한 구원. 신앙생활에 대한 경종이었다.


예수를 통한 오직 은혜의 선물. 구원.

사람의 행위. 사람 그 자체가 아무런 희망 없음의 선포하는 십자가.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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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
1.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2. 사랑이 하나님이다.
가 전혀 다른 의미이듯이.

1. 하나님은 모든이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
라는 말과
2.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
라는 말의 의미는 다르다.

전자(1.)는 사실이고
후자(2.)는 사실을 뒤집어 오해한 것이다.

...

구원받지 못한 수 많은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지옥과 천국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 놓지 못함을 본다.

하지만, 모르는것은 모르는 것이고,
아는것은 아는것이다.

내가 아는 사실은
하나님은 모든이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가지셨고, 의지가 있으시고,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실제하는 지옥에 관한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누군가는 예수님과 구원 없이 죽는다. (그렇게 여겨지는 수없이 많은 죽음이 있다.)
그들은 마음으로 믿지 못했고,
입으로 시인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자동 지옥행인가?





...

자. 어려운 이야기는 잠시 내려두고..
이제 상식이 되어 버린 빛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과학은 빛 보다 빠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이 우주의 크기를 측정해 보니
137억년 쯤 된다고 한다.
빛의 속도로 137억년 쯤 가야 하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만하다.

그런데.

만약 빛보다 빠른 속도의 폭발이 있었다면?
만약 하나님이 그런 능력이 있으시다면?
그래서 137억광년에 걸친 이 광할한 공간을
단 1초에 펼칠 수 있다면?

...

자.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작가의 손에 한 주인공의 위급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1시간 이상 숨쉴만한 공기가 없고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 과연 작가에게도 그럴까?
작가에게도 그의 작품속 주인공을 살릴 방법이 과연 없을까?

작품속 주인공에게 주어진 1시간이
작가에게도 1시간의 같은 시간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작가는 이 장면의 이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작가 인생 전체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모든 방법이 있다.
심지어 이 소설이 판타지 장르라면 일은 더욱 쉬워진다.

...

자. 다시 이 순간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한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 있다고 하자.

과연 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과 능력이 없다고 믿는가?

...

자. 지옥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천국과 마찬가지로 지옥은 살아서 가는 곳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국을 끌어와, 혹은 침노해 누리듯이
지옥 또한 끌어와 침노해 경험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인성 수준을 끌어내려 상상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관계없는 어떤 순간을 떠 올릴때 마다
지옥은 순간순간 우리에게 엄습한다.

...

자.
죽음을 이기셨다는 예수님의 선포를 돌려서 보자.
다 이루셨다는 예수님의 선포를 돌려서 보자.

전능하신 하나님.
그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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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יְהוּדָה

유다 = 찬양
= יְהֹוָה (여호와) + ד (.달렛 =gate. 문)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9 KRV)



찬양
= 하나님 문
= 하나님 예수
= 하나님 그가 구원하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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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유대인들은 밭갈고 씨를 뿌리지 않고
씨 뿌리고 밭을 간다고 한다.
왜 그러는진 몰라도 그런다고 한다.

밭을 다 갈아놓고 씨를 뿌리면
버려지는 씨가 그만큼 적어질거 같지만
여튼 성경적 가르침은 씨뿌리면 기경을 한다.


씨는 무엇인가?
천국의 복음 아닌가. 천국 그 자체 아닌가.
그것을 씨앗의 형태로 보내신다.

말씀이 육신-예수-되어 이땅에 오신 사건.
그것은 천국의 씨앗이었다.
그날부터 이땅은 크고 작게 진동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슨 씨앗을 어디다 뿌릴 것인가?

여전히 씨가 뿌려지고
땅이 기경되고
생명을 싹 틔워야할 땅 들이 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천국의 DNA를 심으셨다.
우리가 그 땅에 심겨야할 씨앗이라고 하신다.

이제 나의 씨앗을
그들에게 어떻게 뿌려야할까.

예수는
베드로는 요한은 바울은
그 씨앗을 어떻게 뿌렸나..

...

어쩌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것은
땅이나 씨가 한정된 자원일때 그리하는것 아닐까?

만약
씨가 무한히 있고
씨가 뿌려져 기경하는 땅만큼
자기 땅이 된다고 한다면

최대한 아무땅이나
최대한 멀리 던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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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un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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