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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파 산 - 거 울
    청년백수,'예수'를 만나다./1. 파 산 2010. 8. 24. 11:26

    마지막 자구책으로 인천 부평에서 멀티숍(Multi-Shop)을 시작하게 되었었다. 디자인과 생산을 기반으로 하던 사업에서 현금 유동성이 좋은 소매업으로 전환을 했던 것이다. 당시 우리 가게에는 두 가지 거울이 있었다.


    피팅룸 문에 붙어 있는 진실된 거울(?)과 헹거 사이에 놓여 있는 ‘구라 거울’이다. 옷 가게에 있는 거울은 대부분 키가 더 커 보이고, 날씬해 보이는 일명 ‘구라 거울’들이다. 진실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왠지 그 앞에 서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40~50대 어머니 손님들은 피팅룸에 붙어 있는 진실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자인 내 앞에서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같이 보는 것은 더 싫어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서 피팅룸에서 나오면 일부러 멀찌감치 피해 서 있곤 했었다. 얼마 후 나는 피팅룸 거울이 보이지 않도록 그곳에 옷을 걸어 놓았다. 특별히 피팅룸의 ‘진실된 거울’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살짝 공개하는 거울로 사용하였다.


    눈동자를 포함한 나의 전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거울’이다. 그 속에 이미지는 좌우가 뒤집혀 있고, 나의 앞과 뒤를 동시에 볼 수 없고, 만질 수 있는 형태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나의 외모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도구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진실이 아닐지라도 자신에 대해 좋은 면을 부각하여 주는 거울 앞에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듯하다. 우리 각자의 취향이나 경험, 가치관, 지적 수준, 이해력 등을 기반으로 그 상대를 판단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그에게 표현하게 된다.

    그것은 말과 억양을 통해서도 전달되며, 짧게 스치는 눈빛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우리는 은연중에, 어떤 경우엔 의도적으로 그것을 서로에게 표현하며 살고 있다. 나를 둘러싼 그 시각들의 총체와 그 판단들의 총체는 곧 나를 증거 하는 세상의 ‘거울’이었다. 그것이 나 자신을 ‘나’라는 어떤 존재로, 어떤 가치로 설명 내지는 규정해 주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치른 윤리 시험 문제에 이런 문제가 있었다.


    다음 중 가장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누구인가?

    ① 남을 잘 도와주는 사람

    ②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

    ③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

    ④ 남을 헐뜯는 사람


    이 뻔한 시험문제에 나는 한참이나 고민을 했고, 3번을 정답으로 선택했다. 틀렸다고 채점하신 선생님께 이유를 여쭈어보았다. 몹시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도 이 문제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1번 같은 사람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진심이 아니거나 진심이라 할지라도 그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그것은 위선이므로, 3번의 사람보다 인격적으로 절대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고 시각이었지만, 그것은 그 이후 내 인생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내가 항상 서 있고 싶은’, ‘나를 가장 긍정적으로 비춰주는’ 『나만의 거울』이 생겨나는 시점이었다.

    내가 생각한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은 남에게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기준 중에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부분이 바로 ‘약속’이었다. 나는 언제나 약속시간에 30분 이상 먼저 가 있어야 했고, 당연히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내 생명을 해하는 살인자와 거의 같이 취급해 왔다. 내가 설정한 가장 엄격한 잣대이자, 나 스스로를 비추는 최후의 정의로운 거울이었다.

    개인회생 신청이 법원에 접수되었고 나와 관계된 모든 채권자들에게 금지명령이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날. 나를 비추고 있던 최후의 거울에 금이 갔다. 그 엄격한 거울 속에 모든 약속을 어긴 나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나 자신을 정죄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면 내가 미쳐버린 상태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미쳐버린 사람들과, 차가운 강물 위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과,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겨버리는 사람들과, 자신의 집 뒷산 바위에서 몸을 던져버린 전직 대통령과, 어느 대학 화장실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해 버린 내 사촌동생이 떠 올랐다.

    그들 모두 나와는 다른 사연을 가졌겠지만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스스로 선택하고 설정했던 마지막 거울,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자신을 이루고 지탱하던 마지막 가치(價値)가 깨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는 최후까지 고수하게 되는 ‘자신만의 거울’이 하나씩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보이기 원하는 그 이미지. 그래서 왜곡된 거울인 것을 알면서도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편에서 자신이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본인뿐이며, 그 때문에 자신이 설정한 자신에 대한 긍정의 이미지는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면서 까지 고수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2010/08/24 - [† 청년백수, '예수'를 만나다./1. 파 산] - 4. 파 산 -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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