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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백수,'예수'를 만나다./프롤로그 2013. 1. 22. 14:16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에스겔 18:23]




    27살 나이에 나는 결혼을 했었다. 당시 결혼 상대는 4살 더 어린 23살의 학교 후배였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생활은 1년도 체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당시 나에게 닥친 모든 상황은 내가 보기에 너무나 억울한 상황이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따위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그 억울함과 분노와 좌절로 인해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살의(殺意)가 가슴 가득히 차 있었다. 내가 숨 쉬는 시간도 저주스러웠지만, 그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있는 그 시간 자체가 견딜 수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침을 삼킬 때마다 가슴에는 콩알 같은 것들이 박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것들은 매일 소주를 병째 들이켜도 녹아 없어지지 않았고 담배를 아무리 피워대도 타 없어지지도 않았다.


    그즈음, 매일 나와 그들을 온 마음으로 조금씩 죽여가고 있던 나는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이라는 길고도 낯선 이름의 단체로부터, 나와 골수가 딱 맞는 백혈병 환자가 나타났다며, 기증 의사를 묻는 내용이었다.


    2001년 즈음 학교에서 골수기증 등록을 했던 기억이 났다. 
    마음이 심란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고 내 호흡조차 거북스럽던 그 시기에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나더러 선택을 하라는 상황이었다.

    담당 코디네이터는 시술 하루 전에도 언제든지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엔 환자는 사망하게 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코디네이터의 설명으로는 A형이던 환자의 혈액형이 시술 후에는 나의 혈액형과 같은 O형이 되고, 또 나처럼 털이 많은 사람이 될 거라는 설명도 들었다. 아직 그 환자는 모르고 있겠지만, 자신과 맞는 DNA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희박한 일인지 설명을 듣고 나니 거절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 분노와 살의를 내 마음에 담아둔 채로는 결코 기증을 할 수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새 생명으로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 만같았기 때문이었다. 결정할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짧은 일본 여행길에 올랐다. 고베 항구가 보이는 작은 bar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문득 내 마음속에서 이런 심상(心象)이 떠올랐다. 뚜껑 열린 쓰레기통을 가슴에 껴안고 쓰레기통에서 나는 냄새를 탓하고 있는 듯한 내 모습이 보였다.

    그저 이 쓰레기통을 비워버리면 될 것을, 나는 그것을 가슴에 움켜 안고 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어리석어 보였다.

    서울로 돌아와 조혈모세포 은행에 전화를 걸었고, 기증의사를 밝혔다. 그때까지 집에 남아있던 그녀의 물건을 챙겼고, 변호사에게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했고, 그녀를 법원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챙겨 온 물건들이 들어있는 쇼핑백 하나를 건넸고, 미안하다고 했고, 이제 됐으니 잘 가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이란 것은 쓰레기통 비우기처럼 그렇게 간단히 비워지지는 않았다.


    담당 코디네이터로부터 시술 전까지 한 달 동안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금주, 금연. 이었다. 갑자기 온갖 후회가 몰려왔다. 12살 이후 단 한차례도 담배를 중단해 본 적이 없던 내가. 한 달을 담배를 못 피운다니……

    게다가 술 없이는 잠들 수 없던 시절이라 매일 위스키나 맥주에 의지해 잠들고 있었는데, 술은 절대 금물이라고 누누이 설명했다.

    초. 난. 감. 한상황이었다.


    그래도 한 달만 참으면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누군가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는 숭고한 사명 같은 것이 나를 다짐하게 만들었고, 실천하게끔 끌고 있는 것 같았다.


    입원 하루 전.

    조금은 착잡하고, 두려운 마음에 사촌누나를 불러내어 함께 마신 와인 반잔을 제외하고는 약속대로 한 달간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담배는 도저히 참지 못했지만, 평소보다 절반 가량으로 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무사히 수술이 끝났고, 골수도 환자에게 충분한 량으로 확보했다는 의사의 설명도 들었다. 일주일쯤 후에 환자의 시술이 잘 되었고, 정상적으로 새로운 피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말 다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잔잔한 기쁨이 솟아올랐다.

    못다 버려진 내 마음에 쓰레기가 치워진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가슴에 거리적 거리던 콩알 같은 것의 느낌도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5년 5월 26일. 날짜가 새겨져 있는 감사패가 아직도 내 책상머리에 올려져 있다.


    2010년 오늘, 예수님을 다시 만난 지 15개월 정도인 지금. 몇 해전 그 사건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께서는 내게 어떤 기회를 주셨고, 무엇을 하신 것인지 알고 있다. 그 깊은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심으로 오히려 나의 많은 것을 회복시켜주셨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였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내 삶은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날의 그 골짜기보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나를 인도하셨고, 나는 다시 한번 죽음을 직면하는 순간을 맞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내가 겪은 이 경험 들을 통해, 이제는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향한 새로운 계획으로 나를 다시금 초청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내 몸과 마음을 향해 새로운 계획으로 이끄셨고, 단 한 생명을 위해 한 달간 내 몸과 마음에 기적과 같은 변화를 일으키시며 준비시키셨던 것처럼, 오늘 다시 나에게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이 책을 준비시키셨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 뜻에 따를 것이다. 일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과의 동역이 주는 유익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처럼, 그도 살아날 것이지만, 나 또한 더 풍성한 것으로 다시 회복되고 채워질 것을 알고 또 믿기 때문이다.


    다시 살게 될 그..

    새 삶을 시작하게 될 그..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게 될 그는...

    자신의 세상 저 너머에서 무엇이 시작되고 있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난 이미 기쁘다..








    2010/08/23 - [† 청년백수, '예수'를 만나다./1. 파 산] - 1. 파 산 - 실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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