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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교 감 - 침묵의 거울
    청년백수,'예수'를 만나다./4. 교 감 2010. 8. 27. 09:44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역대하 32:31, 下]



    내겐 재미있는 구절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 중심만을 살피신다고 말씀하시던 하나님께서 '그 심중의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히스기야를 시험하신 것이다.


    이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심중을 몰라서가 아니라, 침묵하심으로써 히스기야 자신이 그 심중에 있는 것을 스스로 보기 원하신 듯하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셨다는 것은, '욥'에게 허락하신 것처럼 어떤 것을 묵인, 용인하신 것일 수 도 있다. 심지어 그것은 사탄의 영향력 아래에 노출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우리는 '재앙', '질병', '사고', 혹은 '어느 날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꼴 보기 싫은 사람', '이해되지 않는 억울한 상황'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만나고 크리스천으로 사는 삶에도 끊임없이 이런 상황은 다가오는데, 나 또한 예수님을 구세주(救世主)로 영접한 후에도 상황이나 사람들로 인해 여러모로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맞았었다. 


    그때마다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이런 경우, 상황을 못 견디는구나~.' '내가 이런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구나~.' '내 상황이 이 정도로 힘드니까, 하나님을 원망하는구나~' 그런 힘든 상황들을 통해 나는. 내가 몰랐던 '나'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되었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이라는 도구를 나를 비추는 거울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계셨다.

     
    정말 참기 힘든 캐릭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싫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내 속에 있는 어떤 것이 극대화되어 보이는 것임을 알게 되었었다.

    약속시간에 대한 조바심으로 안전부절 못하는 사람을 보면, 아직까지 내 속에 있는 '내 시간'에 대한 집착을 보는 듯했고,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끊임없이 해대는 사람을 보면, 여전히 내게도 남아 있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부류의 사람들은, 거짓말과 과장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분명 이것만큼은 잘못된 것 아니냐며, 하나님께 다시 반문하기도 했다.


    '왜 저런 사람을 자꾸 보여주십니까? 이것은 정당한 정죄이지 않습니까?'

    성령(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조용히. 나의 기억을 나의 아홉 살 시절로 데려가셨다.

    나는 라면 박스에 흰색 종이를 붙이고, 사방으로 붉은 십자가를 그리고 그 아래에는 '불우이웃 돕기'라고 써 붙였다. 위쪽으로는 돈을 넣을 수 있는 투입구를 뚫었다. 그리고 목에 멜 수 있도록 끈을 박스 양쪽으로 만들어 붙였다.


    이것을 들고 1984년 11월 어느 날. 동대구역 대합실 입구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며칠을 연속으로 그곳에 나갔고.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이었는데, 기억으로는 십여 만원 가량 모인 듯했다. 나는 그것을 적당한 고아원 등에 보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라 찾기도 힘들었고, 선뜻 가져 갈려니까 추운 겨울에 혼자 애쓴 나 자신을 생각하니 좀 아깝기도 했다.

    그 하얀색 라면박스는 한동안 우리 집 냉장고 위에 고스란히 있었다. 결국 그 안에 모인 돈들은 야금야금 꺼내 쓰게 되었고 결국 빈 통이 되어 버렸다.


    길에서 만난 선한 마음을 가진 많은 어른들을 속이고, 부모님을 속이고, 마음으로 약속한 그 불쌍한 아이들을 속이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님과 십자가를 이용해 먹은 나쁜 아이 하나가 보였다.

    거짓말하는 사람을 정죄할 만한 어떤 근거도, 자격도 내게 없음을 조용히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근원을 보여주시길 원하셨고, 그것은 언제나 내 속에 있었다.

    나에겐 15년 정도 앓아온 '군집성 편두통'이라는 심각한 수준의 통증을 수반한 지병이 있었다. 이 두통은 19살 즈음에 시작되었었고, MRI 촬영을 5년 동안 2번을 했었다. 뇌에는 어떤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고, 치료법은 고사하고 정확한 병명(病名)도 모른 체 지내고 있었다. 가끔 캔으로 된 산소를 들이마시거나, 심장을 조금 더 느리게 뛰게 하는 약을 복용하거나 흔히 먹는 '타이레 O'이라는 두통약을 조금이라도 조짐이 보일 때 최대한 빨리 먹는 것이 유일한 대처법이었다.


    담배가 끊어지면서 많은 것들이 내게서 떠나갔을 때, 내심 이 두통도 함께 해결되었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도 2008년 예수님을 맞이하고 겪은 두통은 그전 어떤 해보다 극심했고, 길었으며, 심지어 이전에 쓰던 처방으로도 완화되지 않았었다. 배우고 알게 된 모든 신앙적인 방법 모두를 쏟아부었었다.

    빌미를 회개하고, 축귀를 하고, 뜻을 알고자 기도를 하고, 낫게 해 달라고 간구를 했다. 그리고, 통증이 극심하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얻는 새로운 깨달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의 가시처럼 겸손과 깨달음으로 내게 유익이 있다면 평생 가지고 있겠다고 고백하기까지 했다.

    그 극심한 두통을 겪던 20일째 되던 어느 날. 그 순간도 두통으로 몸서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이 순간에 내게 하시는 말씀을 캐내고자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음성으로 아주 조용히 내게 말씀하셨다.

    '애매한 고난을 받을 수 있다. 이 정도 고통이라면, 네가 나를 부인하겠느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매일 새로운 깨달음에 도취되어 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결국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만'을 원하셨지만,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깨달음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20일 동안의 완전한 침묵을 통해 '당신이 죽으라면, 죽을 수 있습니다'라고 기도하던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긴 침묵으로 내게 주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16년간 나를 괴롭히던 두통은 그날로 내게서 사라졌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선까지가 아니라, 당신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신 것을 반드시, 끝까지 이루신다는 것과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 상황을 종결할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으로도 충분이 내게 필요한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마서 9:16]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하신다.

    심지어 내가 그를 부인하던 30여 년간도 그랬었다.




    2010/08/30 - [† 청년백수, '예수'를 만나다./5. 회 복] - 18. 회 복 - 중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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